헤롯대왕(헤롯 1세)의 생애와 왕위 등극 과정
헤롯대왕(Herod the Great, 기원전 74년경~기원전 4년)은 신약성경 마태복음 초반에 등장하는 인물로, 예수님의 탄생 당시 이스라엘을 통치했던 왕이다. 그는 로마 제국의 힘을 등에 업고 유대의 왕이 되었으며, 정치적 능력과 잔혹함을 동시에 갖춘 인물로 평가받는다. 헤롯대왕이 어떻게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었는지, 그의 출신과 정치적 배경, 그리고 왕위에 오르는 과정까지 상세히 살펴보자.
1. 헤롯대왕의 출신과 가문
헤롯은 이드메아(Idumea, 구 에돔) 출신으로, 유대인이 아닌 에돔인의 후손이었다. 그의 아버지 안티파트로스(Antipater)는 이드메아 출신으로, 유대 정치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었다.
① 이드메아와 유대의 관계
이드메아는 본래 에돔 왕국이 있던 지역으로, 바벨론에 의해 유대 왕국이 멸망한 후 유대인들이 이곳을 정복하고 강제적으로 유대교 개종을 강요했다(기원전 2세기). 따라서 이드메아인들은 유대인의 신앙을 따르긴 했으나, 유대인들에게는 여전히 이방인처럼 취급되었다.
② 헤롯 가문의 정치적 성장
헤롯의 아버지 안티파트로스는 하스모니안 왕조(마카비 왕조)의 왕 힐카누스 2세를 지원하며 유대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키웠다. 당시 유대는 하스모니안 왕가(유대의 독립 왕조)가 통치하고 있었지만, 내부적으로는 힐카누스 2세와 그의 동생 아리스토불루스 2세가 왕위를 놓고 대립하고 있었다. 안티파트로스는 힐카누스 2세를 지지하면서 실권을 장악했고, 그의 아들 헤롯도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2. 로마의 개입과 헤롯의 부상
① 로마와 하스모니안 왕가의 갈등
기원전 63년, 로마의 장군 **폼페이우스(Pompey)**가 유대 지역을 정복하면서 유대는 로마의 속국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하스모니안 왕가의 내부 분쟁이 격화되었고, 로마는 힐카누스 2세를 유대의 대제사장 겸 통치자로 세웠다. 그러나 실질적인 권력은 안티파트로스가 행사하고 있었으며, 헤롯도 유대의 군사 총독으로 임명되어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했다.
② 헤롯의 능력과 정치적 기회
헤롯은 군사적, 정치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보이며 로마의 신임을 얻었다. 특히 기원전 47년경, 안티파트로스가 암살된 후에도 헤롯은 유대에서 강력한 지도자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기원전 40년, 로마와 적대적인 **파르티아 제국(Parthian Empire)**이 유대를 침공하며 상황이 급변했다. 파르티아는 하스모니안 왕조의 아리스토불루스 2세의 아들 안티고누스(Antigonus)를 왕으로 세우고, 힐카누스 2세를 폐위시켰다. 헤롯은 이때 로마로 도망쳐 새로운 기회를 모색했다.
3. 헤롯의 왕위 등극 과정
① 로마 원로원의 지원 획득
헤롯은 기원전 40년 로마로 가서 옥타비아누스(후일 아우구스투스)와 안토니우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만나 도움을 요청했다. 당시 로마는 파르티아의 세력 확장을 경계하고 있었고, 헤롯이 유대 지역에서 로마의 충성스러운 대리인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로마 원로원은 헤롯을 ‘유대의 왕(King of the Jews)’으로 공식 임명하고, 그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즉, 헤롯은 유대인들의 지지 없이 로마의 힘으로 왕이 된 것이다.
② 예루살렘 정복과 왕권 확립
헤롯은 로마의 군사적 지원을 받아 유대로 돌아왔고, 3년간의 전투 끝에 기원전 37년 예루살렘을 점령하며 안티고누스를 처형하고 왕위에 올랐다.
4. 헤롯대왕의 통치와 정책
헤롯은 왕위에 오른 후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하며 유대를 다스렸다. 그는 로마의 충성스러운 동맹국으로서 행동하면서도, 유대인의 지지를 얻기 위해 성전을 재건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펼쳤다.
① 건축 사업
헤롯은 유대와 주변 지역에서 대규모 건축 사업을 벌였다. 특히 예루살렘 성전(헤롯 성전) 재건은 유대인들의 종교적 신임을 얻으려는 전략적인 시도였다.
② 로마와의 협력
헤롯은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왕위를 보장받았다. 로마의 승인 없이는 유대에서 어떤 정치적 결정도 이루어질 수 없었다.
③ 잔혹한 통치
헤롯은 자신의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 잔혹한 방법을 사용했다. 자신의 가족조차도 의심하면 처형했으며, 많은 하스모니안 왕족을 제거했다.
5. 헤롯과 예수 탄생 사건
마태복음 2장에 따르면, 동방 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십니까?"라고 묻자, 헤롯은 자신을 위협하는 신생 왕이 있다는 소식에 경악했다. 그는 박사들에게 아기의 위치를 알아보라고 지시했지만, 박사들이 돌아오지 않자 베들레헴의 두 살 이하 남자아이들을 학살하는 잔혹한 조치를 취했다(마태복음 2:16-18).
이 사건은 헤롯의 잔혹한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며, 예수님이 세상의 구원자로 오셨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기도 하다.
6. 결론: 헤롯의 죽음과 유대의 변화
헤롯대왕은 기원전 4년에 병으로 사망했으며, 그의 유언에 따라 왕국은 세 아들에게 나뉘어 통치되었다. 그러나 그의 후손들은 유대를 제대로 통치하지 못했고, 결국 로마는 기원후 6년에 유대를 직접 통치하기 시작했다.
헤롯은 탁월한 정치가이자 잔혹한 폭군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그는 로마의 지원을 받아 왕위에 올랐고, 유대를 통치하며 강력한 왕국을 건설했지만, 그 과정에서 엄청난 폭력을 행사했다. 그의 통치는 예수님의 탄생과 맞물리며, 성경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처럼 헤롯대왕은 단순한 성경 속 인물이 아니라, 로마 제국의 정치와 유대 역사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왕이었다. 그의 통치 방식과 배경을 이해하면, 예수님의 탄생 당시의 정치적 상황도 더욱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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