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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여러 지역이 중세 후반기부터 봉건제를 점차 탈피하고 중앙집권적인 왕국 형태로 변화해 가던 시기에도, 독일(당시 신성 로마 제국)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봉건적 성격을 유지했습니다. 특히 15~16세기 유럽의 르네상스와 절대왕정이 나타나는 동안, 신성 로마 제국은 여전히 분권적인 봉건국가에 가까운 형태였습니다.
독일이 여전히 봉건적이었던 이유
- 신성 로마 제국의 분권적 구조: 독일은 하나의 강력한 중앙정부가 존재하는 국가가 아니라, 다양한 영주, 공작, 주교들이 개별 영토를 다스리는 느슨한 연합체였습니다. 황제가 신성 로마 제국 전체를 통치하기보다는, 제후와 주교들이 각자 영토에서 자치권을 행사했으며 황제의 권한은 상징적이거나 제한적이었습니다.
- 강력한 지방 권력: 독일의 각 제후들은 사실상 자신이 다스리는 영지 내에서 독립된 권한을 가졌고, 자신만의 군대와 법을 시행했습니다. 이들은 황제와의 충성을 바탕으로 연합했지만, 실제로는 독립국처럼 운영되었습니다. 따라서 독일은 중앙집권화보다는 봉건적 자치를 중심으로 한 권력 구조가 오래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 황제 선출 제도: 신성 로마 제국 황제는 유럽의 다른 왕국과 달리 세습되는 것이 아니라 7명의 선제후가 선출했습니다. 이 선제후들은 황제를 선출하면서 황제의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그 결과 황제의 통치력은 더욱 제한적이었습니다. 제후들은 자신의 독립성을 유지하려 했기 때문에 중앙집권화를 저지하는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 종교개혁과 내부 분열: 16세기에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독일은 가톨릭과 개신교의 종교적 분열을 겪게 되었습니다. 많은 제후가 개신교를 받아들이며 교황과 황제로부터 독립성을 더 강화하려 했습니다. 종교개혁 이후 신성 로마 제국은 정치적 통합이 더욱 어려워졌고, 제후들이 자신만의 독자적인 길을 걸으며 봉건적 구조가 유지되었습니다.
유럽과 독일의 비교
16세기 이후 프랑스, 스페인, 잉글랜드 등 다른 유럽 국가들은 점차 절대왕정을 확립하며 중앙집권적인 국가로 변화해 갔습니다. 왕들은 귀족들을 통제하며 봉건적 특권을 줄이고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했습니다. 그러나 독일은 이러한 중앙집권화를 이루지 못했고, 19세기까지도 여러 자치 영토와 독립적인 도시 국가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런 봉건적 구조와 분권화는 1871년 비스마르크에 의해 독일 제국이 통일되기 전까지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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