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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동성애 역사! 기독교를 핍박했던 네로황제가 어마어마한 동성애자?!

별의별이야기쟁이 2024. 10. 1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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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의 동성애 역사는 복잡하고 다면적이며, 로마 사회의 계층적 구조, 권력 관계, 성적 관습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로마의 동성애는 현대적인 개념으로 이해되는 동성애와는 다소 다르게, 주로 권력과 남성성, 사회적 위계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로마 사회의 성적 관념과 규범이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1. 로마 사회의 성적 관습: 남성 중심의 사회

고대 로마에서 성적 관계는 현대의 성적 지향 개념보다는 사회적 지위와 권력에 크게 좌우되었습니다. 로마 사회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였으며, 성적 행위는 남성의 힘과 통제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성적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성별보다는 성관계에서 차지하는 역할이었습니다. 즉, 남성이 성적 행위에서 "능동적인" 역할(삽입하는 자)을 수행하는 것은 정상적이고 기대되는 것이었지만, "수동적인" 역할(삽입당하는 자)을 하는 것은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로마 사회에서 남성의 성적 능동성은 그의 남성성을 강화하는 요소였고, 이러한 성관계는 상대방이 남성인지 여성인지와 상관없이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이게 핵심포인트... 중요한 것은 그 남성이 항상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점이었죠. 이러한 관점에서 로마의 동성애는 성적 지향이 아니라 권력의 표현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2. 로마에서 동성애적 관계의 사회적 위계

로마의 동성애 관계는 대개 연령이나 사회적 지위에 따른 위계질서를 따랐습니다. 주된 예로는 나이 많은 남성이 젊은 소년과 성적 관계를 맺는 "페더라스티" (pederasty) 관계가 있었습니다. 이는 고대 그리스에서 유래된 관습으로, 그리스 문화가 로마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로마 사회에도 퍼졌습니다.

a) 페더라스티와 로마의 차이점

그리스의 페더라스티는 흔히 교육적, 도덕적 목적이 강조된 관계였지만, 로마에서는 이보다 더 직접적이고 성적인 측면이 부각되었습니다. 그리스에서 나이 많은 남성은 젊은 소년을 교육하고 사회적 의무를 가르치는 역할을 맡았지만, 로마에서는 이런 관계가 사회적 통제를 상징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나이 많은 남성은 언제나 능동적인 위치에 있었고, 젊은 소년은 수동적인 역할을 맡았습니다.

로마 사회에서 이러한 관계는 때로는 노예나 하층민을 상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상류층 남성들은 사회적 지위가 낮은 남성과 성관계를 가질 수 있었지만, 같은 사회적 계층의 남성과 수동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즉, 로마에서 동성애적 관계는 계층적 위계에 따라 적절하거나 부적절하게 여겨질 수 있었습니다.

b) 자유 시민과 노예 간의 성적 관계

로마의 노예제도는 성적 관계에 있어서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자유로운 시민 남성은 자신의 노예와 성관계를 맺을 권리를 가졌고, 이는 노예의 성별과 상관없이 허용되었습니다. 노예는 법적 권리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성적 동의는 고려되지 않았으며, 성적 착취는 일상적인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로마의 동성애적 관계는 단순한 성적 지향의 문제가 아니라, 노예와 주인 간의 권력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노예와의 성적 관계는 로마 남성의 권력과 통제력을 보여주는 상징이었고, 이는 자유 시민에게는 허용되었지만, 사회적 동등한 계층 간에 이루어지는 동성애적 관계는 사회적으로 부정적으로 여겨졌습니다. 능동적인 역할을 하는 남성은 남성성을 유지했지만, 수동적인 역할을 하는 자유 시민 남성은 경멸을 받았습니다.

 

3. 로마 제국의 황제들과 동성애

로마 제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여러 황제들이 동성애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들이 주도한 성적 관습은 때때로 논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특히 로마 황제들의 성적 행위는 그들의 권력과 결부되어 있었으며, 이는 그들의 정치적 행동과도 연관되었습니다.

a) 네로 황제

로마 황제 네로(Nero)는 동성애적 행위로 유명했던 인물 중 하나입니다. 네로는 여러 차례 남성과 성적 관계를 맺었으며, 특히 유명한 사례로는 그가 자신의 남자 노예였던 스포루스(Sporus)와 결혼식을 올린 사건이 있습니다. 네로는 스포루스를 여성처럼 옷 입히고 자신이 그의 남편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네로는 이 관계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했지만, 로마 사회에서는 그의 행동이 광기와 기이함으로 비춰졌습니다.

 

네로의 이러한 성적 일탈은 그가 통치자로서의 정당성을 잃는 데 기여했으며, 결국 그의 폭력적이고 기괴한 행위들은 그의 몰락의 원인 중 하나로 여겨졌습니다.

 

 

b) 하드리아누스 황제

하드리아누스(Hadrian)는 동성애적 관계를 맺었던 황제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입니다. 하드리아누스는 그리스 문화를 깊이 존경했으며, 그의 연인이었던 젊은 남성 안티누스(Antinous)와의 관계는 매우 유명했습니다. 하드리아누스는 안티누스를 깊이 사랑했고, 안티누스가 나일강에서 익사했을 때 하드리아누스는 그를 신격화했습니다. 하드리아누스는 안티누스를 기리기 위해 도시를 건설하고 동상을 세웠으며, 그의 죽음을 기념하는 종교적 의식까지 만들었습니다.

하드리아누스와 안티누스의 관계는 비교적 긍정적인 사례로 여겨집니다. 로마 사회에서 하드리아누스는 자신의 연인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공개적으로 표현했으며, 이는 권력자들이 성적 관계를 통해 어떻게 권력을 유지하고 활용하는지를 보여줍니다.

 

4. 동성애에 대한 로마 법과 도덕

로마 법은 동성애적 행위를 법적으로 명확하게 금지하거나 처벌하지 않았지만, 동성애에 대한 도덕적 기준은 사회적 지위와 성적 역할에 따라 달랐습니다. 로마 사회에서는 성적 행위가 남성성을 훼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한 허용되었습니다. 즉, 동성애적 성행위가 사회적 위계와 권력 구조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한, 그것은 사회적으로 수용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성애적 행위가 자유 시민 남성 간에 이루어지거나, 사회적 권위를 위협하는 방식으로 발생할 경우, 이는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로마 사회는 성적 자유를 어느 정도 허용했지만, 그 자유는 언제나 권력과 사회적 지위에 의해 규정되었습니다.

 

5. 기독교의 도입과 동성애에 대한 변화

로마 제국 말기, 기독교가 제국의 공식 종교로 자리 잡으면서 동성애에 대한 태도는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 기독교는 동성애적 행위를 "자연에 반하는 죄"로 간주했으며,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동성애에 대한 관용은 점차 사라졌습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Constantine)가 기독교를 제국의 국교로 채택한 후, 동성애적 행위에 대한 법적 규제가 강화되었습니다. 동성애는 신이 허락한 성적 질서에서 벗어난 것으로 여겨졌으며, 특히 남성 간의 성적 관계는 엄격히 금지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로마 제국의 종교적, 도덕적 기준이 그리스-로마 전통에서 기독교 윤리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발생했습니다.

 

결론

고대 로마의 동성애는 단순한 성적 지향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 계층, 성적 역할에 대한 복잡한 사회적 구조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성적 행위는 권력의 상징이었으며, 로마의 동성애는 주로 능동적인 성적 역할과 사회적 위계에 따라 수용되거나 비난받았습니다. 로마 황제들 역시 동성애적 관계를 맺었으며, 이들의 성적 행위는 정치적 행동과 얽혀 있었습니다. 기독교가 로마 제국에 도입되면서 동성애에 대한 태도는 급격히 변화하였으며, 이는 로마 사회의 성적 자유에 종말을 고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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