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백호(嚴白虎)는 중국 후한 말기에서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로, 원래는 오군(吳郡, 현재의 중국 저장성 일대)을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했던 지역 군벌이다. 그는 《삼국지연의》에서는 손책(孫策)과 대립하는 악역으로 묘사되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존재는 후한 말기의 군웅할거 시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엄백호는 원래 손견(孫堅)이 죽은 후 그의 세력이 약화된 틈을 타서 강동 지역에서 독립적인 세력을 형성한 인물 중 하나였다. 당시 강동 지역은 군벌들이 각자 세력을 구축하며 중앙 정부와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엄백호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오군 일대를 점령하고 나름대로 세력을 확대하려 했다. 그러나 그는 손책과 비교하면 정치적, 군사적 역량이 부족했고, 결국 손책의 공격을 받고 패망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엄백호가 매우 과장된 악당으로 묘사된다. 그는 탐욕스럽고 교활한 인물로 그려지며, 손책과 맞서 싸우지만 결국 패배하고 처형당하는 운명을 맞이한다. 이는 《삼국지연의》가 손씨 가문을 중심으로 서술되면서 손책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엄백호를 악역으로 설정한 것과 관련이 있다. 실제 역사에서 엄백호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으며, 그가 손책에게 패배한 후 어떻게 되었는지도 명확하게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그가 후한 말기의 혼란 속에서 등장한 군벌 중 하나였으며, 손책이 강동을 평정하는 과정에서 제거된 인물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엄백호가 패배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그는 손책과 달리 강력한 정치적 후원자가 없었다. 손책은 아버지 손견의 유산을 이어받았을 뿐만 아니라, 원술(袁術)과의 관계를 활용하여 군사적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반면 엄백호는 지역 군벌로서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려 했지만, 강력한 동맹이 없었고 정치적으로도 미숙했다. 둘째, 군사적 역량의 차이도 컸다. 손책은 젊고 유능한 장수들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전투 경험이 풍부한 반면, 엄백호는 강동 지역의 토착 세력을 기반으로 한 군벌로, 조직력이 상대적으로 약했다. 셋째, 지역 사회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다. 손책은 강동 지역을 평정하면서 현지의 명망가들과 협력하고 그들의 지지를 얻었지만, 엄백호는 그런 정치적 감각이 부족했다.
엄백호의 몰락은 후한 말기 지방 군벌들의 운명을 잘 보여준다. 많은 군벌들이 일시적으로 독립적인 세력을 형성했지만, 결국 더 강한 군벌이나 중앙 세력에 의해 흡수되거나 제거되었다. 엄백호 역시 손책이라는 강력한 지도자와 맞서 싸우다가 패배한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그의 몰락 이후 손책은 강동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고, 이후 손권(孫權)에 의해 오나라가 건국되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삼국지연의》에서 엄백호는 손책과 대립하는 과정에서 교활한 술수를 부리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손책에게 항복할 것처럼 보이면서도 배신을 꾀하고, 자신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술책을 쓰지만, 결국 손책의 압도적인 군사력 앞에서 무너진다. 이러한 묘사는 손책의 영웅적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한 장치일 뿐, 실제 역사에서 엄백호가 그렇게까지 부정적인 인물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엄백호는 삼국지 전체의 흐름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비중이 크지 않은 인물이지만, 후한 말기의 지방 군벌들이 어떻게 형성되고 소멸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서 의미가 있다. 그의 존재는 손책이 강동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장애물 중 하나였으며, 그를 제거함으로써 손책은 강력한 군사적 입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만약 엄백호가 좀 더 정치적, 군사적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면, 강동 지역의 역사는 달라졌을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엄백호는 후한 말기의 혼란 속에서 등장했다가 사라진 수많은 군벌 중 하나로, 손책이라는 강력한 인물과의 대결에서 패배하면서 역사에서 사라졌다. 《삼국지연의》에서의 과장된 묘사와 달리, 실제로는 지역 군벌로서 나름대로 세력을 형성하려 했지만, 손책과 같은 강력한 지도자와 경쟁하기에는 역량이 부족했던 인물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삼국지의 영웅들이 등장하기 전, 지방 군벌들이 어떻게 난립했고, 결국 통합의 흐름 속에서 사라졌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로 볼 수 있다.